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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의 옛이야기5> 경부선 철도의 노선 변경
-애초 경부선은 구미 지나지 않아... 김천 남면 부상 지역에 금오산역사
-1916년 선산지역 물자 수송 위해 구미역 개통
2022년 01월 17일 [지비저널]

경부선 철도의 노선 변경

                  -소설가 정완식

 

몇 년간 KTX 북삼역 유치 문제는 구미시민과 인근 지역의 숙원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특별히 설치될 예정은 없어 교통으로 발전해온 역사를 통해 시민들의 바람을 돌이켜보려 한다.

 

경부선 철도는 러일전쟁을 대비한 일본이 최단 거리를 노선으로 잡아 최단 시간에 건설하려고 서둘렀다. 철도가 완공되기 전에 전쟁이 끝나자 군사적인 목적은 사라지고 식민지 경영을 위한 경제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다.

구미는 철도에서 제외되었지만 군 단위에 불과했던 김천의 발전은 날로 면모를 일신했다. 처음에는 김천에서 금오산 뒤편으로 약목을 직선을 잇는 노선이었다. 약목에서 부상의 금오산역에 이르는 경부선은 15도의 경사와 노선이 험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190511일에 영업을 시작한 금오산역은 높은 경사 때문에 보조 기관차가 대기하려고 설치한 곳이었다.

 

국권이 상실되자 철도의 재구성이 논의되었다. 구미는 물자의 집산이 가능한 지점으로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예천, 영주, 봉화, 문경 등의 곡물이 수운과 육운을 이용해 종래 왜관역으로 모였는데 구미역이 개통되면 이를 흡수할 수 있어 경제적인 면이 주목받게 되었다.

19147월에 김천 약목간 철도공사 개수할 결과로 금오산역은 폐지하기로 결정되고 새로운 노선을 따라 선산군 구미면에 역을 설치하기로 하고 721일부터 철도용지 매수가 시작되었다.

노선개량공사는 33.8km로 철도개량공무소장 영옥(永屋昌雄)이며 나중의 후임은 청목(靑木) 총독부 기사였다.

구미 지역 공구의 주임은 강부(岡部), 감독 등천(藤川)와 소상(沼上)이며 삼산(杉山전구(田口)가 측량을 맡았다. 원청회사는 유마조(有馬組)가 구미에 출장소를 차렸는데 책임자는 삼도(三島辰二)였다. 유마조는 4백여 년이 넘은 회사로 청일전쟁 때 히로시마에서 육군 역부, 직공 약 2만 명을 청부한 회사로 삼청(森清右衛門)이 대표인 토건업체였다. 철도건설로 유명한 회사이며 아직도 영업중이다.

하청회사들은 선기동 쪽은 굴본조(堀本組), 구미역은 장곡천조(長谷川組)와 총본조(塚本組), 약목쪽 공사는 판본조(坂本組), 터널공사는 시전조(柴田組)가 맡았다. 구미역을 맡은 두 개 회사는 구미역 건물과 시가지 도로구축 등 도시화 공사를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미역에서 시장에 이르는 시가지 도로는 1915년 하반기에 착공되는데 직통 8(14.5m) 도로여서 이를 기초로 하여 40(72.7m)마다 4(7.2m)의 기반으로 시가를 형성하는 계획이 결정되었다. 길가에 가옥을 건설하는데 철도개통 시기가 되면 약 1천호에 가까운 신축가옥을 에상했다. 이것이 요즘 소위 1, 2, 3번가의 개념이 된다. 이 도시계획을 기반으로 구미의 장래는 왜관, 김천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구미는 낙동강 수운의 요지에 있어 왜관의 반수, 김천의 과반수는 구미역에 화물은 집중하게 되어 일본이나 기타 지역에서 이주하는 상인은 반드시 한번 시찰을 요하는 지점이라고 소문이 났다.

 

초기에는 동양척식회사의 지원을 받은 농업이민이 소규모 있었지만 철도공사가 결정되자 1914년에 본격적인 일본인 진출이 시작되었다. 진출하는 일본인은 실제 시찰을 와서 둘러보고 당분간 토지는 무료로 대부해 주었는데 담당하는 자는 노산의영(櫨山義英)이었다. 노산의영은석유와 창고업을 계획한 자로 스탠다드 석유회사 제품을 대구정미석유조합을 경유하여 대리점을 하고 있었다. 조선인 상인으로는 김석배가 공급했다.

이들은 농업부호 복정(福井森太郞)과 구미역에서 정거장부터 강을 타고 내려오는 물자를 위해 낙동강변에 궤도를 부설하고 수륙운수의 편리를 도모하려했지만, 폐기되었다.

 

경기부양은 건설만한 게 없어 뒤이어 인부들을 위한 숙소인 여관과 술집이 들어섰다. 요리집으로는 예기(藝妓)와 작부(酌婦)를 갖춘 국도루(菊島樓)를 비롯해 금촌(今村), 천방(千芳), 일력(一力)이 생겨났고 구옥(龜屋)여관 진보(進步)여관, 문명관(文命舘) 등이 생겼다.

철도공사가 진척됨에 따라 일본인들도 많이 증가했다. 1915년에 들자 250여호에 인구 6백 명이 넘었다.

공사판인지라 싸움도 벌어졌다. 1915218일 철도노동자 조선 인부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두 명이 부상당했는데 한 명은 중상자였다. 중상을 입은 노동자의 동료들 수십 명이 곤봉을 들고 복수하러 나오다 경찰에 저지됐다. 이튿날 일본인, 조선인 노동자 수십 명이 집합해 난투극을 벌이려다 경찰에 의해 제지되었다. 한동안 민간인들이 불안에 떨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유통업에 종사해 잡화점으로 강전(岡田상점, 일본 조선상품), 송포(松浦상점, 정미 잡화), 청목(靑木상점, 일본 조선상품)이 제법 컸고 구미시장에는 제재와 정미를 하는 관야(菅野상점)과 운송업을 담당하는 일선(日鮮)공동운송부가 생겼다. 과자를 만드는 적굴(赤堀상점)도 있었다.

19154월에 군청 소재지인 선산면의 유지들의 발기로 선산군수 장직상의 찬성을 받아 면내 도로를 일신하여 확장할 계획을 세웠다. 우선 시가지 도로에 착수해 동서남북을 잇는 십자도로를 개축하고 구미면의 구미역에 이르는 3등도로 30리를 수축할 계획이었다.

 

19166월 말에 구미역의 건축이 준공되고 역 앞의 시가 8(14.5m) 도로도 바둑판형으로 바뀌고 인근의 신축가옥은 속속 건설 중이어서 철도영업을 기대했다. 시장도 점차 규모가 커져 장날이면 하루 4천 명이 오갔다.

1026일에 선산과 구미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연합해 구미역 개통축하식을 거행했는데 마침내 111일 구미역을 거치는 경부선 철로가 개통되었다. 그해 말까지 하루 승하차 인원은 평균 150명이 넘었다.

19173월 말이 되자 선산 읍내에서 구미역까지 3등도로 공사가 준공되어 육상교통을 보완했다. 11월부터 구미면의 난파강(難波江)이란 자가 구미 선산간 승합마차 영업을 개시했는데, 남북행 급행열차의 승객은 물론 일반을 상대로 영업했다. 선산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하고, 구미에서는 오후 2시 반에 출발했다.

일본인들은 주로 경북 내륙에서 생산되는 미곡을 수출했다. 1차 세계 대전(1914-1918)에서 승전국의 위치에 오른 일본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젊은 농촌 청년들이 도시로 몰려 농사 인구가 줄어든 데다가, 지주들에게 쌀을 공급받아 파는 도매상들이 가격을 담합해 일본 내 쌀값이 폭등했다.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81211, 일본인 미곡상들은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자본금 3만원 규모의 금오창고업조합을 결성했다. 조합장은 산전(山田由太郞)이 맡았는데, 황해도에서 내려와 해방 때까지 경북의 손꼽히는 부호였던 시즈오카현 출신의 석천(石川宗平:이시가와 소헤이)이 이사로 처음 등장했다. 석천은 구미에서 부를 쌓은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조선인으로서는 안응태(安應泰), 이동우(李東雨)가 이사를 맡았다. 향후 통운을 통해 미곡을 수출하는 것이 주요업무였다.

 

경제가 활성화되자 1912년에 선산군에 1대이던 차량이 1921년에는 79대로 늘어났다.

구미역 부근에 곡물상이 모여들자 새끼와 가마니가 대량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군에서는 각 면에 제조전습소를 개최해 생산을 장려했지만 필요한 양에는 턱없이 모자라 자급의 반도 못되었다. 농가의 부업으로 상당히 괜찮은 벌이가 되었다.

1915년에 들어서 일본인 이주민이 증가되자 학령아동도 있어 학교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6월이 되어 설립위원에 고광(高廣常次郞), 청목(靑木吾平), 관야(菅野進之助)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에 힘썼다. 7월부터 가교사를 사용해 12명의 생도에게 임시수업을 하다가 19166월에 학교조합 의원을 선거하고 1918년 일본인을 위한 구미심상소학교가 낙성되어 우편소 신축과 더불어 그들의 구미 지배는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조선인의 학교는 1908년부터 각 면별로 생겼지만 선산면의 창선학교를 제외하고는 운영난에 부딪히고 현재 구미초등학교인 구미공립보통학교는 2년 늦은 19201128일에 개교했다.

 

 

 

 

지비저널 기자  gbjou163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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