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천류(鄙官賤類) 선산군수 유진찬(兪鎭瓚)
-소설가 정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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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사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금오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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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찬은 본래 이지용과 화투를 치던 친구로 우정이 상당히 깊은데 권세가에 아부하는 비열한 인품으로 유명했다. 이 자는 1905년 무렵 선산군수로 임명받아 재임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자기 치적이 우수한 편에 들지 못함에 염려가 깊었다. 관찰사 이근호가 빚이 많고 돈을 좋아하는지라 유진찬이 관찰사를 찾아가 비열한 언사로 고개를 조아렸다.
“사또께서 경향간에 쓰임이 많으시고 빚도 많으시니 그 고민을 제가 성의로 대신해드려야 하옵니다. 그러나 선산이 비록 기름진 고을이나 갑오년 이전이면 비록 수만금이라도 사또께 바칠 수 있을 터이나 요즘은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엽전 5천 냥을 성의로 드리니 받아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이 관찰사가 크게 기뻐하며 명령을 내리는 것이 곧 엽전을 꿰어 차는 방법인지라 상주군수 길영성에게 명령했다.
“상주는 선산에 비교하자면 큰 고을이라 선산군수가 내 빚을 염려해 내가 만금으로 그 성의를 깊이 마음에 두었노라.”
“하관(下官)도 사또의 빚을 염려해 오던 바, 엽전 1만5천 냥을 성의로 바칩니다.”
방법이 제대로 통하자 이 씨는 경북 각 군수에게 일제히 청첩을 보내 상주, 선산 두 군수에게 받은 이유를 분명히 드러내며 각기 고장의 형편에 따라 고루 나누어 만 냥이나 수만 냥 씩 배정해 바치게 함으로 만족할만한 돈을 거뒀다.
유 군수는 이 방법을 만든 행위로써 이 씨를 위한 묘책기공(妙策奇功)이 있음을 자부했다. 유 군수 때문에 겉으로는 바른 행동을 하는 동시에 탐욕한 관찰사 이 씨의 일은 세상이 다 알게 되었다. 이후 유 씨는 중추원 참의의 엽관을 위해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정치상 대단히 아부하는 태도가 있었다.
일진회는 당시 선산에서 정토종(일본계 불교)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유 씨는 자신이 정토종을 찬성한다며 관리와 군인을 동원해 정토종에 입교하기를 원하는 동시에 이미 혁파된 잡세를 각 장시에 일일이 강제로 징수하여 민정이 들끓었다. 군민이 소란스럽자 관찰사 신태휴가 상주군수로 조사관을 임명해 조사하게 했는데 ‘군의 무뢰배가 일진회원을 격동하여 소요가 생겼다’는 이유로 지방분견소 일본 헌병이 선산에 와서 소요민들을 진압 해산했다.
원인을 보면 유진찬 군수의 가혹한 세금이 도화선이 되었다. 도내 각 읍의 결세는 엽전으로 80냥이고, 신화폐로는 12원으로 규정해 세금을 받았다. 선산군은 신화폐로는 16원으로 늘려 거두었다. 다른 읍의 규례와 비교해 매 결에 4원을 더 거두니 결민들이 분노로 모여 유씨를 장시(場市)에 끌고 가 일제히 죄를 성토하고 매 결에 더받은 4원을 기한을 정해 내놓으라고 했다.
군민들은 군수 유진찬을 장터로 끌어내어 발길로 걷어차고 폭행을 가했다. 일을 주동한 조용국(趙用局), 박영석(朴永石), 이민용(李敏容), 정원백(鄭源百), 신학수(申學守) 등 다섯 명이 체포되었다. 조용국은 종신 징역, 다른 사람들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탐관오리에게 폭력을 행사한 죄치고는 너무 대가가 컸다.
불법행정을 하다가 군민의 소요를 초래가 한양으로 도망쳐 숨은 후 내부대신 이지용이 다시 강진군수로 임명하려 했다. 그러자 강진군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유진찬은 1908년 10월 29일에 노름을 하다 잡기범으로 동석자 6명과 중부경찰서에 체포되었다가 조카들이 손을 써서 다른 네 명과 불구속 재판에 넘어갔다. 이 자는 돈과는 이별할 수 없는 운명인지 정씨 성을 가진 부인과 돈문제로 재판하다 패소하여 화계동 소재 토지를 집행당하게 되었는데 이 토지는 조카인 유인준(兪麟濬)의 소유여서 조카가 이의를 신청했다.
1906년 음력 9월 무렵부터 1907년 8월 무렵 사이에 선산, 개령, 성주 등지에 나타난 수십, 수백 명 단위의 의병은 충북 괴산 출신의 편군선(片君善) 의병장의 지휘를 받았다.
의병들이 군청에 뛰어들어 감옥을 열어 동료 두 명을 구출하고 강영서(姜永瑞) 선산군수를 끌고 남문 밖으로 나갔다. 군수된 몸으로 치욕을 겪은데다 죄수를 잃어버리고 의병을 잡지 못해 면직되었다.
이듬해까지 선산군은 의병의 활동이 있어 거류하는 일본인들의 경비가 삼엄해졌다.
1908년의 김창수(金昌洙) 군수는 세금을 횡령했다는 모함을 받았는데, 사실 선산의 근대학교인 사립 창선학교(私立 彰善學校)를 위해 많은 애를 쓴 분이었다.
올해는 시장과 기초, 광역 의원을 선출한다. 택지조성과 아파트 건설에 자기 부하들의 회사에 특혜를 준 어느 시장이 유진찬과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탐관오리를 그냥 두고보지 않고 종신징역과 15년 형을 각오하고 징치한 1백여 년 전 선산 선조들의 올곧은 마음을 헤아려 보며 새해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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