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화상(阿道和尙)과 도리사(桃李寺)
-정완식
|
 |
|
↑↑ 신라불교초전지에서 본 맑은 가을 하늘 |
|
동트기 전의 희뿌염 한 빛이 토굴로 스며들었다. 아도는 꿇은 무릎을 펴고 몸을 일으켜 목불 앞에 절을 하고는 토굴을 벗어났다. 낙동강은 짙은 안개를 피워 올려 허연 백사장의 자취를 덮어버렸다.
그는 토굴 곁의 양우리를 둘러보고는 모례의 대문을 들어서 부엌으로 갔다. 밥을 하던 모례의 누이동생이 칡잎에 싼 밥 덩어리를 내주었다. 아도는 밥을 받아들고 양우리의 문을 열고는 양떼를 몰아 강변으로 나갔다. 입으로는 끊이지 않고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웠다. 그가 칡잎을 헤쳐 밥을 먹으려 하자 아기 양 두어 마리가 신기한지 곁으로 다가왔다. 아도는 놈들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어 주고는 밥을 나눠 주었다.
“너희들도 나처럼 부처님의 가피로 이 세상에 왔으니 무럭무럭 자라거라.”
아도는 ‘나의 길(我道)’을 간다는 이름이다. 남들은 보면 먹빛 수염(墨胡子)이니 ‘검은 이국의 오랑캐(黑胡子)’라고 놀릴지언정 개의치 않았다. 푸른 눈과 검은 수염을 단, 생김새가 이상하다고 고구려의 첩자라며 죽이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서북풍에 떠밀려 머나먼 남쪽까지 왔다. 그렇게 검은 수염을 단 사람들이 더러 남쪽으로 왔지만 발자취는 가뭇없다.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인 일선(一善) 사람 모례는 수염이 많고 양을 기르면서 지방 사람들에게 고개를 잘 숙이다 보니 이름이 털례(毛禮)가 되었다. 몸을 의탁한 아도가 보면 아버지를 닮은 막내 삼촌처럼 생겼다. 그러나 모례는 아도를 노예처럼 생각했다. 모례 역시 먼지바람 부는 북방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사람이었다. 사막기후에 익숙하다 보니 강을 끼고 있어 목초가 풍성한 지방에서 양들이 비쩍 마른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 아도는 열 댓 마리의 양을 수백 마리 넘게 번식시켜 장자(큰어른) 소릴 듣게 해줬어도 비를 가릴 베조각 하나 제대로 주지 않았다. 보다 못한 그의 누이동생 사씨(史氏)가 강변의 토굴로 와서 위로해 주었다.
“스님, 우리 오빠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남의 고장에 와서 살려면 독해지지 않았겠어요?”
“보살님, 저는 털례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부처님을 모시는 제가 어찌 남을 미워할 일이 있겠는지요.”
사씨는 머리를 자르고 수염이 시커먼 청년이 볼수록 신기했다. 움푹 패인 눈은 약간 푸른 빛을 띠었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힘으로 사람을 빨아들였다.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는 것만 빼면 아이들에게도 존대말을 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양치는 일이 끝나면 토굴에서 나무토막으로 잘생긴 사람을 깎는데 칼질 한 번에 절 한 번, 주문 한 번으로 지극정성이었다. 산신제에 참석해서 절은 하면서도 주문을 외우다 이교도 “아이 대가리(阿頭)”놈이라 사람들에게 얻어맞았다. 다음날이면 신기하게도 말끔한 몸으로 변함없이 양떼를 몰고 나갔다. 자신이 아파 사경을 헤맬 때 머리맡에 앉아 따뜻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는데 신기하게도 정체 모를 힘이 몸에서 솟더니 밤이 새기도 전에 일어나서 걸어다닐 수 있었다. 소문이 나자, 아이 대가리라고 놀리던 사람들도 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스님을 불러갔다.
늘 존대를 하니 아이들도 스님 삼촌이라며 따랐다. 양들도 새끼 때부터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주니 무럭무럭 자라고 새끼를 낳아 낙동강변 풀밭을 하얗게 수놓았다.
멀리 사람 무리가 강변 길을 따라오는 게 보였다. 이윽고 관리가 섞인 듯한 사람 무리는 마을로 들어섰다. 궁금해진 사씨는 아도에게 합장한 후 마을로 돌아갔다. 한참이 지나자, 다시 사씨가 달려오며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스님, 오라버니가 오시래요!”
아도는 천천히 일어나 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 무사히 자라야 한다. 튼튼하게 커서 새끼도 많이 낳고 잘살아야지?”
모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지방 관리와 수염을 깨끗이 다듬은 무리 앞에 모두 무릎을 꿇은 채 아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 옷을 입은 관리가 아도를 힐끗 보며 물었다.
“화상은 도를 알고 신통하여 못하는 것이 없다는 데 고구려에서 왔다는 아두냐?”
“……귀한 분이 병이 나셨군요? 서라벌로 가겠습니다.”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용한 사람이군’하는 표정으로 수하들에게 호령했다.
“당장 떠나자!”
아도가 그들을 따라갈 채비를 하자 모례의 누이동생이 냉큼 따라나섰다. 사람들이 말렸지만, 그녀는 결연했다.
“저는 스님의 제자가 되기로 했어요. 당연히 제가 따라가야 해요.”
아도는 싱긋 웃으며 모례에게 합장을 했다. 그리고는 떠나는 아도를 보며 울음소리를 내는 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서라벌까지는 먼 거리였다. 길에서 소녀는 아도에게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셨지요. 한 번도 말하지 않으셨어요.”
“내 아버지는 먼 나라에 사는 아굴마(我掘摩)라는 분이었지요.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어머니인 고씨(高道寧)를 만났답니다. 다섯 살 나던 해에 어머니가 절로 보내 불도가 되었는데, 열여섯 살 때 아버지를 만나러 가서 큰스님(玄彰)에게 불법을 배웠지요. 열아홉 살에 고향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동쪽 나라로 가라고 하셨지요.”
“그 동쪽 나라가 여긴가요?”
아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 나라는 아직 불법을 모르지만, 앞으로 삼천여 달이 지나면 계림에 위대한 왕이 나와 불교를 크게 일으킬 것이다. 서라벌에 절터가 일곱 곳이 있는데, 하나는 금교 동쪽의 천경림(興輪寺), 둘째는 삼천기(永興寺), 셋째는 용궁 남쪽(皇龍寺)이다. 넷째는 용궁 북쪽(芬皇寺)이며, 다섯째는 사천미(靈妙寺), 여섯째는 신유림(四天王寺)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일곱째는 서청전(曇嚴寺)이니 모두 절터라고 하시며 법수(法水)가 깊이 흐르는 땅이니 거기로 가서 대교(大敎)를 전파하면 그 나라 불교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제게 일러 주셨어요.”
이틀이 넘게 걸려 도착한 서라벌은 아기자기하지만 평화로운 곳이었다. 대왕(未雛王)의 딸(成國公主)은 병세가 위중해 인사불성이었다. 많은 의원들이 다녀갔지만 신통한 치료를 하지 못한 듯했다. 수많은 장졸의 그림자가 온몸을 칭칭 감고 있는 것을 보니 흔히들 말하는 객귀가 단단히 달라붙어 있었다.
“화상은 치료할 자신이 있겠소?”
대왕은 온화하지만 그리 기대하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승이 지성으로 부처님께 빌어 보겠습니다.”
합장하며 조용히 대답하는 아도를 보며 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도는 깨끗한 방을 하나 비우게 하고 환자의 침대를 문지방에 걸쳐 놓고 향을 살랐다. 그리고는 작은 구리종을 하나 구해 나무틀에 걸었다.
그는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초롱한 빛을 뿌리는 맑은 별빛에 아도는 합장을 하면서 불국정토가 될 나라는 하늘마저 평화롭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는 사씨를 불러 곁에 앉혔다.
이윽고 맑은 종소리가 향불의 연기를 따라 밤하늘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아도의 낭랑한 불경소리가 흘러나왔다. 인자하지만 힘있는 목소리였다. 곁의 보살도 함께 목소리를 나란히 하며 경을 외웠다. 아도의 눈앞에 전쟁터에서 숨진 병사들의 영혼이 천천히 연기를 따라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휘관인 듯한 무쇠 갑옷의 사내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도는 정성을 다해 그들이 서천으로 가는 길을 불경에 실어 인도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무쇠 갑옷의 사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공주의 몸을 빠져나왔다. 무쇠 갑옷은 문밖에서 기다리던 부하들을 데리고 아도를 돌아보며 향 연기를 따라 밤하늘로 올라갔다.
‘다음 생에는 들판에서 짐승밥이 되는 운명은 되지 마시오. 부처님께서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해주실 것이오.’
마음으로 빌었지만 어쩐지 그들의 영혼은 다음 생애에도 갑옷을 입을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사내들이 떠나자 공주는 눈을 반짝이며 일어나 앉았다.
“배고파요.”
기쁨이 넘치는 대왕이 물었다.
“화상은 무엇을 원하든 과인이 들어드리겠소.”
“소승은 달리 원하는 바가 없고, 천경림(天鏡林)에 절을 지어 이 나라가 복 받기를 빌고 싶습니다.”
대왕이 허락했다. 아도는 띠풀로 지붕을 덮어 절을 창건한 뒤 설법했는데, 후일의 흥륜사이다. 보살 사씨는 신라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그녀는 삼천기(三川岐)에 절을 지었는데 후일의 영흥사(永興寺)이다. 얼마 후 대왕이 별세하자 사람들이 아도를 해치려 했다.
|
 |
|
↑↑ 도리사에 위치한 아도화상 좌선대 |
|
여전히 구두쇠인 모례는 서라벌에서 돌아온 아도를 보고 놀랐다. 물을 한 그릇 마신 아도는 대문을 나섰다. 가축의 우두머리인 아도를 놓치기 싫었다.
“어딜 가는가?”
“소승을 만나시려면 얼마 후 이 집으로 칡순이 내려올 것이니 그것을 따라오시면 됩니다.”
얼마 후 정월 엄동인데 대문에 칡순이 들어오기에 모례가 줄기를 따라 올라갔다. 작은 띠집에서 아도는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있었다. 마음에 무겁게 자리한, 공주의 몸에서 빠져나간 외롭고 추운 장졸들이 좋은 영혼으로 태어나 나라를 지키는 청년으로 자라나길 부처님께 빌고 있었다. 그의 주위는 겨울임에도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고 복사꽃(桃花)과 오얏꽃(李花)이 만발해 흡사 극락세계 같았다.
모례가 온 것을 본 아도는 큰 기대하지 않고 작은 망태를 만들어 시주를 청했다. 모례는 쾌히 승낙하고 쌀을 부었는데, 아무리 부어도 차지 않았다. 끝내 가득 채우지 못하고 천 섬을 시주해 절을 세우니 동국 최초 가람 도리사이다.
이로부터 신라는 불교가 퍼지고 원광법사의 가르침으로 삼국을 통일할 청년들을 길러냈고, 호국불교의 시원이 되었다.
|
 |
|
↑↑ 신라최초사찰 도리사 극락전 |
|
|